책과 함께하는 마술같은 세상 경기도민들을 위한 독서포탈 북매직
‘착해야만 했던’ 착한 아이가 벌이는 일탈과 ‘자기 찾기’의 여정
‘훌훌’이라는 단어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뜻으로 쓰이지만, 기본적으로 ‘가벼움’의 이미지와 연관되어있다. 특히 이 ‘훌훌’이라는 단어에는 ‘털다’라는 서술어가 붙으면 마음을 괴롭히는 고민 따위를 탁 놓아버리고 가벼워지는, 그래서 곧 하늘로 날아가기라도 할 것 같은 해방감 혹은 청량감마저 들게 만든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가벼움을 얻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한 가지 조건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가벼움’을 느끼기 위해선 먼저 ‘무거워’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선 ‘구속과 짐’을 먼저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이 ‘훌훌’이라는 단어가 갖는 ‘양면성’을 제목으로 활용한 소설이 있다.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훌훌》(2022)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유리’는 입양아이다. 자기를 입양했던 엄마는 유리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가출을 해서는 가끔 얼굴이나 보여주다가 언제부턴가 소식마저 완전히 끊겼다. 그 덕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할아버지와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 유리는 이 지긋지긋한 환경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제목처럼 ‘훌훌’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작스러운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고, 그녀의 어린 아들 ‘연우’가 그녀의 삶 속으로 끼어들었다. ‘답답한 현실’에 무거운 ‘돌덩이’ 한 알이 더 얹히는 순간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돌덩이’ 덕분에 그녀의 삶이 변한다는 것이다. ‘무겁고’, ‘답답하고’, ‘힘겨운’ 것은 여전했지만 무언가를 돌보고 지켜야 하는 상황에 서고 나서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었다. 서로의 삶을 ‘존중’ 한다는 허울 아래에 ‘감정의 벽’을 철옹성처럼 쌓아 올려온 ‘유리’와 ‘할아버지’, 그리고 갑자기 굴러들어온 ‘골칫덩어리’ 연우는 조금씩 서로를 보듬으며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 유리는 그렇게 깨달았을 것이다. ‘훌훌’ 털어버리고 가벼워지는 방법에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함으로써 ‘이겨 내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쓴 문경민 작가는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에서 단편 소설 〈곰씨의 동굴〉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우투리 하나린》(밝은 미래), 《딸기 우유 공약》(주니어김영사) 등 어린이 청소년 문학을 주로 써온 작가로서 《훌훌》로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소설을 쓰는 작가인 만큼 ‘인간의 선의’에 대한 우호적인 생각이 작품에 잘 드러난다. 우리 삶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작은 선의’가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데 능숙한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