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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하는 마술같은 세상 경기도민들을 위한 독서포탈 북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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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읽는 습관에서 벗어나 모두가 함께 보며 함께 듣는 빅북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키워주세요.

빅북(Big Book)의 힘

쥐 캐릭터가 들고있는 커다란 책에서 갖가지 상상이 튀어나오는 이미지

남의 말을 듣는 일은 사람 사이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현대 대통령 중 조직 경험이 가장 많다고 하는 미국의 아이젠하워는 1967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당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그것은 (정책 입안에)모든 사람이 당신 앞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도록 하고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는 것이다.”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일 못지 않게 듣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듣는 것도 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일은 인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읽는 것과 말하기에 힘을 쏟아왔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발언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빅북의 등장은 이런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혼자 책읽는 습관에서서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책이 매우 크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미 오래 전 그림책이 우리나라 보다 먼저 생겨났던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빅북이라는 형태의 그림책은 익숙하다. 특히 도서관은 그림책 읽어주는 곳으로 어린이와 부 모들에게 환영받는 곳이다.

독일 슈튜트가르트(stuttgart) 공공도서관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데 비결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한참 뛰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을 먼저 손을 씻게하고, 그 다음 쿠키 등 과자를 나누어 준 다음 세 번째 단계에서 두루마리로 포장된 시 한 편이 들어 있는 글을 주고 맨 마지막에 조명이 있는 어두운 방으로 들어간다. 그 곳엔 작은 인디언 천막이 설치되어 있고 책 읽어주는 사람은 이제 마음이 차분해진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 한 권의 그림책을 보여주고 들려 주는데 어느 곳이나 이처럼 정성을 기울일 것이다. 그런데 평소 보아왔던 그림책의 두 배 크기의 커다란 책이 그들의 눈 앞에 펼쳐졌을 때 아마도 호기심은 더 커질지도 모른다. 책을 보게 하려는 어른들의 노력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절실한 과제이다. 공공도서관에서의 프로그램은 늘 이 화두를 중심에 놓고 고민해 왔다.

이번 빅북 제작과 보급에서도 오랜 시간 여러 구성원들에 의해 신중한 준비 과정을 거친 후 나오게 되었다. 출판사에서 발행한 원형 상태를 크게 확대하는 문제는 간단한 일이 아니어서 한 종 한 종 발행한 곳과 절차를 거치는 일이 많은 시간 소모되었고, 한 편으로 그림 이미지가 원래 사이즈였을 때와 커졌을 때를 고려해 적당한 작품을 선택하는 일 또한 까다로운 것이었다. 그 후로 시제품을 일차로 만들어 본 후 제작에 들어가는 이 모든 과정은 조심스럽지만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하다.

아직 어디서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이 새로운 실험은 앞으로 이 빅북을 펼쳐 어린이들에게 들려줄 사서와 구연자들에게 이어진다. 외국의 경우 개별 출판사별로 여러 종의 빅북이 나온 바 있지만 이렇듯 한 곳의 기관에서 다양한 수 십 종의 그림책을 선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기대된다.

<스마트폰과 함께 잠들다>를 저술한 레슬리 펄로 하버드대 교수는 기업에서 종사자들이 디지털 기기와 단절시킴으로써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피력한 바 있다. 심지어 프랑스 정보기술 기업 아토스는 올해 말까지 회사에서 이메일을 없애고 다른 소통 방식을 채택할 계회이라는 보도가 전해지기도 했다. 이 시기에 새삼스럽게 아날로그 방식의 책읽기, 빅북 그림책을 얘기하는 이유는 이처럼 자명하다. 이미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디지털 시대를 선도해 왔지만 결국 책을 소흘히 할 수 없음을, 그런 징후를 보고 있는 것이다. 멀어져 있는 책을 가깝게 다시 되찾아 올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여기서 찾는다.

정병규 어린이 책 예술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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