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하는 마술같은 세상 경기도민들을 위한 독서포탈 북매직
감 잡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살림
가정의 사정이 무수한 만큼 ‘살림’을 접하는 시기와 계기 또한 사람마다 다양하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야 아무런 경험과 준비 없이 가사노동을 맞닥뜨리게 되어 모든 게 부담되고 당황스럽기만 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보호자의 돌봄을 받지 않는 나이가 되어서, 자신의 가정을 꾸리며 등 떠밀려 시작하는 살림 말고, 그전부터 주거 공간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의식을 갖고 차근차근 내 몫의 살림을, 그 와중에 즐거움을 찾아가며 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소위 이러한 ‘살림력’에 힘을 보탤 9명의 필자가 도서「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에서 자신이 겪어낸 살림 이야기를 청소년 독자에게 풀어냈다.
앞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필진의 성비이다. 독자가 글을 읽으며 각 필자의 성별을 얼마나 의식할지는 모르겠지만 특정 성별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기 쉬운 살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필진의 성비를 반반으로 나누지까진 않았지만 한쪽 성에 편중되지 않도록 구성한 점이 세심하고도 마땅하다.
책을 읽고 나면 살림을 할 줄 모르고, 한 적도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실은 자신이 살림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살림'하면 떠오르는 청소, 빨래 같은 전형적인 가사노동 외에도 새로운 가족을 맞는 일로부터 파생되는 육아, 동·식물 돌봄에 대해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살림의 공간을 가정이 아닌 회사로까지 확장했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화분에 물을 주는 것,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것, 업무 메일을 주고받을 때 나만의 노하우로 완성도 있는 메일을 작성하는 것 모두 살림이란 카테고리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살림은 현상유지를 위한 지루한 반복의 연속인 일들만이 아니라, 내 삶이 다채로워질 수 있게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또한 포함된다는 걸 알 수 있어서 반갑다.
필자들은 살림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서술하고 필승비법을 전수해주지 않는다. 그저 살림에 대한 본인의 경험담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두런두런하는 쪽에 가깝고, 필자마다 마지막 페이지에 살림팁 두어가지를 일러주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이 ‘살림’에 관하여 청소년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도 저자들이 살림에 대해 얘기하는 태도와 유사하지 않을까. 꼭 완벽하고 거창하지 않아도 시행착오 끝에 생긴 오로지 자기만의 살림 이야기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노하우 몇 가지가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살림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쉽게 쓰이지 않았지만 살림을 어렵게만 말하고 있지 않은 이 책처럼 살림에 접근한다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