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하는 마술같은 세상 경기도민들을 위한 독서포탈 북매직
줄자, 삶의 간격을 알려주는 지침서
빨간 벽돌로 된 건물이 있다. 건물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순례주택’ 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파란 깃털을 가진 새와 분홍 깃털 가진 새 그리고 초록 잎 가득 담긴 한 그루의 나무가 서있다. 《순례주택》 은 오래된 주택가에 서 있는 빨간 벽돌로 된 주택과 활짝 열려 있는 창문을 보여주며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책 속으로 들어오도록 표지에서부터 손짓하고 있다.
저자 유은실은 《일수의 탄생》, 《내 머리에 햇살 냄새》를 비롯한 여러 편의 동화, 그림책 《나의 독산동》, 청소년 소설 《변두리》, 《2미터 그리고 48시간》 등 여러 분야를 꾸준히 오고 가며 아동과 청소년문학에 열정을 보인 작가다.
이 책은 2018년 《2미터 그리고 48시간》 이후 3년 만에 선보인 청소년 소설로서 전작에서 그레이브스병과 함께 살아온 정음이의 시선으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보여준 것처럼 이 책에서는 자신들을 1군이라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월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아빠, 엄마, 언니의 모습과는 달리 스스로 살아가는 삶을 살고자 하는 수림이의 모습을 통해 ‘삶’은 관광객의 입장이 아니라 순례자의 입장에서 걸어가야 함을 보여준다.
《순례주택》은 김순례씨와 그녀의 남자친구 故박승갑 씨의 둘째 외손녀인 화자 ‘오수림’(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어머니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외할아버지와 순례주택에서 살고 있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순례주택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1층 상가 ‘조은영 헤어’ 가족, 201호 (고)박승갑 씨, 301호 대학교 시간 강사 허성우 씨, 302호 홍길동 씨와 남편 길동아저씨, 401호 정체불명의 프리랜서 영선 씨, 402호 김순례 씨.
박승갑 씨는 원래 살던 아파트를 딸과 사위에게 내어주고 순례주택으로 들어왔다. 수림의 부모님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철이 없다. 부모와 형제에 기대어 가식과 허영으로 맺어진 삶을 당연하게 누리다가 가족들의 도움이 끊기고 살던 아파트마저 넘어가면서 평소에 무시하던 빌라촌, 순례주택으로 들어온다.
“엄마 아빠는 서로에게 존댓말을 한다. 존중하며 살려고 그런다나. 서로는 존중하면서 남에겐 막말을 하는, 남보기 부끄러운 금실이다.”(순례주택 69쪽)
‘원더 그랜디움’ 으로 대표되는 삶의 우월성은 ‘순례주택’ 으로 대표되는 삶의 하층부로 옮겨가며 산산조각이 난다. 16살 수림이가 진즉 알고 있었던 삶의 보편성 앞에 가족들은 그제서야 마주 서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순례주택은 ‘삶의 간격’을 재어보도록 도와주는 ‘재정립’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네 엄마 겁나는구나, 그럴줄 알았어. 오죽 자신이 없으면 아파트에 산단 걸로 자기를 확인하고 싶었겠어. 자랑할게 비싼 아파트 밖에 없는 인생처럼 초라한 게 있을까.”(순례주택 205쪽)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부탁을 남긴다.
“기성세대가 망가뜨린 지구별에서 함께 어려움을 겪는 어린 순례자들에게 미안하다. 사는 집의 가격이나 브랜드로 사람을 구별 지으려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린 순례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어린 순례자들에게 순례 주택이 알베르게 같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산티아고 순례길 어느 작은 마을, 지친 몸과 마음을 녹인 알베르게 같은 글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이 책과 전작 《2미터 그리고 48시간》을 통해 저자가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줄자’이다. 이 책에서는 ‘줄자’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는 것이 아닌 그 간격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작에서는 치료 후 최소 48시간 동안 다른 사람과 최소 유지 간격인 2미터라는 ‘관계’를 설정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그 간격을 줄이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임을 알려준다. 작가는 ‘줄자’를 통해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삶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순례주택, 53쪽)
이 책을 읽는 청소년과 어른들이 사회가 정한 틀에서,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삶’의 가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본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본인이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모습을 그리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