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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배워서 쓰는게 아냐


김동식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오래전에 봤었던 류승완 감독의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생각난다. 그 영화를 만들 때 류승완 감독은 너무 돈이 없어서 다른 현장에서 사용한 소품을 가져다 쓰고, 배우가 없어서 집에서 자고 있는 동생을 출연시켰다. 정말 이딴 식으로 만들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화질은 조악했으며 편집은 거칠었고 스토리는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내게는 수천억을 들인 영화보다 훨씬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류승완 감독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상한데 자꾸 보게 되는 그런 느낌. 김동식 작가의 회색인간은 바로 그런 책이다. 정말 막 쓴 것 같은데 읽다 보면 자꾸만 감기는 맛이 있는 책. 작가는 소위 말하는 문단 출신도 아닐뿐더러 제도권하고는 정말 거리가 멀다.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이끌어 주는 교수님도 없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누구보다 자유롭다. 자유로운 척을 뛰어넘어 어디서 본 듯한 느낌도 없다.

 

작가는 오늘의 유머(이하 오유)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재한 글을 묶어서 소설집으로 출간했다. '연재'라는 표현 자체도 사실 적절하지 않다. 그는 단지 자신이 활동하던 오유라는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을 뿐이다. 커뮤니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글을 올릴 때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학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고, 이상한 글들이 대부분이지만 재미가 있고 꾸준하게 쓰면 자연스럽게 주목받는다. 다들 돈을 벌고자 글을 올리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게시판에는 오롯이 실력만 남는다. 그래서인지 세상이 김동식 작가를 발견 한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지도 모른다. 그의 글에는 쓰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기승전결을 갖춘 단단한 플롯으로 구성된 작품을 기대한다면 김동식 작가의 소설을 읽고 실망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그런 탄탄한 장르 소설이 아니다. 그냥 이야기 그 자체다. 태초에 '이야기'라는 게 있었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날 것의 느낌이 강하다. 그의 소설에는 MSG가 안 들어갔기 때문에 생각보다 싱거울 수도 있다. 선택을 하면 된다. 탄탄한 장르소설을 원한다면 다른 책을 집어 들면 되고 갓 손질을 마친 싱싱하지만 약간 비릿한 참소라 같은 소설을 원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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